예수님을 흑인 여자로 그려낸 천주교의 신성 모독

한 여성 미술가가 흑인 여성을 모델로 그린 ‘인민의 예수’란 제목의 유화가 미국의 가톨릭 시사주간지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밀레니엄 특집호 표지 작품으로 당선되었다. “검은 피부의 예수를 그린 유화 1점이 뉴 밀레니엄을 맞아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업데이트하기 위한 미국의 한 가톨릭 시사 잡지 예술작품 응모 전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차지했다…심사위원장인 웬디 베켓 수녀는…검은 피부에 두터운 입술을 가진,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닌 채 슬프지만 자신에 차서 우리를 찾아 나선, 예수의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1999년 12월 14일자 한국일보). 조그만 사진과 함께 실린 이 기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천주교는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기로 작정했는가?

천주교 그림들은 다윗의 씨에서 나온 유대인으로서 검은 머리에 동양인의 피부색을 지니셨던 예수님을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으로 제시하는 데 만족하지 못해서 이제는 흑인으로, 그것도 남자도 아닌 여자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수를 여자로 만든 것을 가지고 ‘뉴 밀레니엄을 맞아 업데이트된 그리스도의 이미지’라고 선언하는 것은 참으로 도를 지나친 신성모독이다. 그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는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무슨 사회 개혁가 정도로 바라보려니까 이렇게까지 잘못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했다.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려는 것이라

                            10For the Son of man is come to seek and to save that which was lost.

                        

누가복음 19:10한글킹제임스성경

잃어버린 자, 즉 허물과 죄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죽어 있으며, 하나님과 원수된 채 진노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 시대의 억압받는 가난한 민중을 구해 주는 민중의 구주로서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개인의 영혼 구원이 아닌 사회 구원을 전하다 보니까 이렇게까지 빗나가는 것이다.

사회 복음은 그 용어부터 어불성설이다. 사회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는 지옥에 가지도 않는다. 지옥에 가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 개개인의 혼, 지옥 불에서 천 년을 타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혼이다. 불쌍한 민중을 도와주고 가난과 질병, 기아에서 구해 준다는 이념은 좋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성경적 기독교의 이념이 아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이 땅에서 통치하시기 전까지 사회는 조금도 선한 방향으로 변화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사명은 땅 끝까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증인이 되는 것이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1만 명의 기아에게 구호품을 전달해 주었다고 하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지상 생명만 잠시 연장되었을 뿐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는 운명에서 구원받게 해 주지는 못한 것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기억하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서는 안 되며,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기독교 단체들, 특히 천주교 단체들은 영혼 구원은 뒷전으로 한 채 사회사업만 하고 있으며, 그들 자신도 구원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 사회 복음적 발상을 가진 이가 있었다. 바로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3마리아가 매우 값진 감송향유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의 발을 닦으니, 그 집이 향유 냄새로 가득 차더라.
                            4그때 그의 제자 중 하나로 주를 배반할 자인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기를
                            5“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하니
                            6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며 돈주머니를 맡아 그 안에 넣은 것을 지니고 다니기 때문이라.

                            3Then took Mary a pound of ointment of spikenard, very costly, and anointed the feet of Jesus, and wiped his feet with her hair: and the house was filled with the odour of the ointment.
                            4Then saith one of his disciples, Judas Iscariot, Simon’s son, which should betray him,
                            5Why was not this ointment sold for three hundred pence, and given to the poor?
                            6This he said, not that he cared for the poor; but because he was a thief, and had the bag, and bare what was put therein.

                        

요한복음 12:3-6한글킹제임스성경

유다가 마치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하는 것처럼 말한 이유는 그가 도둑으로서 돈 주머니에 든 돈을 탐냈기 때문이었다. ‘인민의 예수’를 전파한다고 공언하며 가난한 인민을 진정으로 염려하는 천주교라면 어째서 그들의 종교 조직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교황은 으리으리한 궁전 같은 곳에서 초호화판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예수님을 비롯해서 성경에 나오는 어떤 인물이 그와 같은 부를 누렸단 말인가? 천주교인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만인제사장을 말씀하고 있는데도, 버젓이 성직자와 평신도를 수직적으로 구분하여 성직자가 특별히 거룩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대변하는 계층인 양 교인들을 속히는 천주교는 거짓 종교이면서 기독교의 탈을 쓰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천주교인이 복음을 올바로 믿고 구원받아 진리에 눈을 뜨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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