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생활에서 믿음 생활로

서론

나의 종교 생활은 흔히 말하는 ‘모태 신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감리교회에 다녔던 나는 종교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죄인인지, 거듭남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혼과 영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라는 확신도 없는 상태로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거룩하게 보이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며, 소위 ‘교인’으로서 40년이란 세월을 하나님 보시기에 무지한 바리새인 같은 삶을 살았다.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진료 하면서 하루하루 바쁜 생활 속에서 더욱 기쁨이 없고 짜증스러운 믿음 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것이 내 신앙의 전부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새로운 삶과 신앙을 찾아 보기 위해 모든 세상적 성공을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이민길에 오르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면서, 개역 한글판성경과 영어 리빙바이블을 여러 번 정독하여도 나의 삶은 여전히 공허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을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 공화국에 갈 의료 선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료 선교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거듭남의 확신도 없이 그저 하나님 앞에 선히 보이려고 또한 종교 행위로 무엇인가를 이룩해 보려고 떠난 그 사역의 열매는 허무했을 뿐이었고, 나는 1년간의 고행 사역(?) 끝에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진리를 찾았다.

그러다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때 킹제임스성경과 그 성경에 입각하여 쓴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등 책자들을 소개받아 한 보따리 싸들고 뉴질랜드로 돌아와 책들을 읽는 순간 귀한 보석 같은 진리를 발견하였고, 이때부터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말씀보존학회의 서적들을 읽는 즐거움과 기쁨의 하루하루가 지속되었다.

그 오랜 세월 소위 믿음 생활을 한다면서 의문이 되었던 구절들, 영적으로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나 풀려고 애썼던 구절들(QT 등을 통해), 왜 소위 그리스도인(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가 등에 대해 가졌던 의문들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 무오한 확실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돌아가심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진실되이 믿게 됨으로써 구원을 받고 거듭남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와 식구들은 그 즉시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와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되었다.

여러분도 지난날의 나와 같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세상 생활이 바쁘고 피곤하여 지금 내가 믿는 믿음이 올바른 것인가, 목사님의 가르침이 맞는 것인가, 내가 쓰고 있는 성경이 정말로 100%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보기를 원한다. 지금부터 나를 진리로 인도한 보석의 일부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본론
1. 바른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지 못하면 그 믿음은 군인이 총칼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 소용이 없다(히 4:12). 무기인 성경이 올바르지 못하고 인간에 의해 변개되었다면(고후 2:17),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 못쓰는 총칼인 “성서”인 것이다.

나도 개역한글판성경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 의심 한 번 안하고 믿음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개역한글판성경에 2,200 단어가 삭제되고 30,000군데의 오류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성경의 교리가 변개되거나 빠져 있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웠고, 즉각적으로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하면서 어떤 것이 옳은지를 공부했다. 그 결과 나는 가슴이 뛰었고, 내가 가진 모든 변개된 성서들을 버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보겠다. 여러분이 가진 개역한글판성경을 펴 보라. 마 17:21, 마 18:11, 마 23:14, 막 9:44, 막 9:46, 막 11:26, 막 15:28, 눅 17:36, 행 8:37 등을 보라. 거기에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절이 왜 없음으로 되었는가를 주석서들을 찾아보고, 여러분의 담임 목사에게 물어 보면 “필사본들의 내용들이 서로 달라서…, 필사본의 필사 과정에서 누락되어서…, 필사본의 보관 과정에서 지워져서…” 등의 변명을 듣게 될 것이다.

개역한글판성경에는 그렇게 없어진 구절이 열 셋이나 된다. 마 5:18, 눅 21:33, 벧전 1:25, 왕하 10:10 등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보존하신다고 누누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건만, 무슨 이유를 대고 있는 것인가? 50억이 넘는 인구의 머리털 수까지 세시는 하나님이(마 10:30), 인간의 손을 도구로 하여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하셨고 섭리로 보존하신 약 75만밖에 안되는 단어에서 한 자라도 세상과 인간에 의해 없어지게끔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시겠는가? 만약 하나님 자신이 하신 약속을 못 지키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참 비참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없음)”이라는 자리에 구절이 있건 없건 전체적 의미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왜 그렇게 과잉 반응을 보이냐고 묻는다.

한 예로 사도행전 8:37을 보자. 한글킹제임스성경에는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36절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는 침례를 받으려 했고, 37절에서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했으며, 그에 따라 38절에서 침례를 받은 것이다. 즉 침례는 구원받은 후 구원의 간증으로서 받는 것이다(벧전 3:21). 그러나 37절이 없다면 구원과 관계없이 침례를 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침례 받으면 구원받는다는 이단 교리가 나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편 12:7을 찾아보라. 자신이 가진 성서가 왜 그토록 변개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역한글판성경: “여호와여 저희를(=이스라엘 백성)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보존 하시리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하나님의 말씀)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여러분의 성서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으로 바꿈으로써 말씀의 영원한 보존을 이스라엘 백성의 영원한 보존으로 바꾸어 버렸다. 전후 문맥을 잘 보면 그것이 말씀인지 이스라엘 민족인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어 하나의 변개가 별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말씀의 뜻이 완전히 변개되어 하나님 말씀이 영원히 보존된다는 구절이 없어졌으니, 여러분과 여러분의 목사들은 절대무오한 성경은 최초의 원본뿐이며, 우리가 지금 가진 개역한글판 성경조차도 100% 완전한 성경이 못되니, 아무 성경이나 써도 무관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유주의 신학의 동조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면상 구약의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 신약의 헬라어 비잔틴 원문(=전통원문, 표준원문, 다수 필사본, 시리아 원문)으로부터 번역된 킹제임스성경이 왜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성경인가를 설명할 수 없고 다음 기회에 서술 하겠으나, 내가 킹제임스성경이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성경들 중에 킹제임스성경이 가장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드높이고, 또 삼위일체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으며, 사탄의 세력과 지옥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주고 있다.

둘째, 그 어떤 성경들보다도 이 킹제임스성경이 1611년 영국에서 번역된 이래 부흥과 수많은 혼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반면 1881년 후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의해 만들어진 헬라어 원문(변개된 카톨릭 사본에 기초한)에서 나온 지금의 많은 대다수의 영어 성서들과 개역한글판성경을 비롯한 기존의 한글 성경들은 교회의 부패와 배교, 거짓 교리, 이단, 복음 전파의 부재, 죄악의 만연이라는 열매를 보이고 있다.

둘째, 그 어떤 성경들보다도 이 킹제임스성경이 1611년 영국에서 번역된 이래 부흥과 수많은 혼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반면 1881년 후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의해 만들어진 헬라어 원문(변개된 카톨릭 사본에 기초한)에서 나온 지금의 많은 대다수의 영어 성서들과 개역한글판성경을 비롯한 기존의 한글 성경들은 교회의 부패와 배교, 거짓 교리, 이단, 복음 전파의 부재, 죄악의 만연이라는 열매를 보이고 있다.

혹자는 미국 및 서양 세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킹제임스성경을 갖지 않고 이렇게 성장했는데 그 열매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질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나 교인의 숫자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긍정적인 열매인가? 왜 한국의 교회 수가 나날이 많아지는 것만 생각하고, 술집을 포함한 유흥 환락 업소가 나날이 교회보다 더 많아지고 있음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교회와 교인이 많으면 무엇 하는가? 그 안에는 거듭난 자도 소수이며, 그들에게는 진정한 열매도 없고,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세상 사람과 구분이 안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이전에는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지옥으로 가는 혼들을 이겨오고, 세상을 향해 진리를 담대히 전파하는 열매들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성경이 변개되고 삭제되고 첨가된 사실은 접어두고라도, 위의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어머님 때부터 간직해 오던 그 귀한 개역한글판성경을 버리게 되었다.
여러분이 가진 성서를 갖고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은 군인이 고장난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 적군을 만나면 총 한 번 못 쏘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성서로는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도, 카톨릭교인, 안식교인 등을 만났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바른 성경 해석의 중요성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또한 중요한 것이다. 성경은 성경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전 2:13). 인간의 지식으로써 성경을 억지로 풀면(벧후 1:20, 3:16)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아니라 종교적이기만 한 신앙으로 빠져들고 만다. 과거에 내가 ‘성서’를 읽으면서 깨닫지 못하고 혼의 기쁨과 소망의 확신이 없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의 담임 목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인물들에 대해 그것은 나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쳤다. 그러자니 성경의 90% 이상을 모두 영적으로 적용하여 가르치고 설교했다. 다른 많은 목사들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하니 성경을 억지로 영적으로 푼 결과 거짓 교리가 성행하고 그 교리가 지금의 기독교계를 군림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가? 첫 번째로 그들에게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없을 뿐더러, 성경을 역사적, 교리적, 영적으로 확실히 나누지 못하고 있고, 그 말씀의 대상이 유대인인지, 이스라엘 민족을 제외한 전 세계 이방 민족인지, 구원받은 이들 즉 교회인지를(고전 10:32)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반드시 “나누어서” 해석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1:11을 보라.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다가올 영광(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어느 때,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하던 것이니라.” 디모데후서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이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면, 다음의 질문들을 숙고해 보라.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선악과를 따먹지 말아야 영생을 얻는가? 노아와 그 가족처럼 방주를 지어야 구원받는가? 모세 시대처럼 지금도 십계명과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받는가? (만일 그렇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안식일 대신 소위 “주일”을 지키기에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침례인 요한 때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심을 예비하고 정결 의식으로서 침례를 받아야만 구원받는가?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 땅에 오심을 증거하기 위해 사도들에게 권능을 주셨으나, 그 뒤로 신약 성경이 완성되어 가면서 이 사도의 권능은 없어지고 사도라는 직분 또한 없는데, 오늘날 사도처럼 표적, 이적을 보이려 하는가? 앞으로 있을 대환란, 천년왕국, 그리고 영원 세계에 대한 교리를 지금 은혜 시대에 가져와 성경 말씀을 왜곡하여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가?

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간구했고 부러워했던 무지한 교인이었다. 피지 선교현장에서도 이런 능력을 갈구했었고, 그 결과 소위 방언(?)이 터지고 신유의 은사도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말씀에 부딪혀 그런 일들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었다. 고린도전서 14장은 방언의 장이다. 그런데 읽어 보라. 방언을 하라고 하면서도 내용의 90%가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고 있는 이유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오직 외국어이며(행 2:8), 그 방언은 하나님이 그 뜻을 아시고(고전 14:2), 본인 자신도 그 뜻을 안다고(고전 14:14) 되어 있고, 반드시 통역을 하라고(고전 14:27) 되어 있는데, 과연 여러분은 그 뜻을 알고 방언(?)을 하고 있는가? 또 신유의 은사는 어떤가? 바울의 서신서들을 잘 읽어보라. 바울 자신도 몸의 가시를 제거 못했고, 디모데의 위장병도 치료 못했고(딤전 5:23), 트로피모도 마찬가지였다(딤후 4:20). 사도들의 은사가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자만 스쳐도 병을 낫게 했던 베드로처럼(행 5:15), 손수건만 대도 병을 고쳤던 바울처럼(행 19:12) 여러분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사도들은 못고치는 병이 없이 모든 환자를 고쳤는데(행 5:16), 여러분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환자에게 안수한 후 치유가 안되면 믿음이 없어서 치유가 안되는 것이라고 변명하지 않는가?(막 2:5). 엉터리 흉내를 내지 말라.

물론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치유할 수 있다(약 5:14-16). 이것을 주님이 본인에게 특별히 베푸신 은사로 생각하여 병든 자에게 안수해 주고 능력을 베풀려 한다면 유대인의 사도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의사로서 신유 은사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고, 또한 피지 선교 현장에서도 체험하여 병을 낫게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러분이 다녔던 기도원, 부흥집회 등에서 다소의 기적(?)이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인 것이다(요 14:30). 그는 빛으로 가장하여 오는 빛의 천사(고후 11:14)이고,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며, 공중 권세의 통치자(엡 2:2)요 흑암의 권세자(골 1:13)인 것이다. 그는 성경에 174회나 그 이름이 등장하면서 성경 내용의 약 절반에 가까운 장면에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만 알고 있지 그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인 사탄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세상의 책들 중에서 성경만이 오직 사탄의 정체를 확실히 밝히고 있다. 사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존재이며, 인간의 지혜로는 가장 현명했던 선지자 다니엘보다 더 현명하고(겔 28:3), 진리의 영이 아닌 미혹의 영(요일 4:6)으로서, 사람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능력의 존재이다(계 13:3).

그러나 그 사탄은 주님의 종으로서(고후 12:7, 욥 1:6)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흉내내나, 완전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함이 그 특징인 것이다. 따라서 부흥회나 기도원에 병든 자들이 많이 모여도 극소수에게만 능력이 나타나고, 또 그 치유는 얼마 안가 재발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혹의 영에 속지 말라!

결론

마지막으로, 이 시대는 배교의 시대를 걷고 있다. 전 세계 이방인들의 죄악이 충만해지고(롬 11:25)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이 때에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가? 주님의 말씀에 100% 확신하고 아멘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스라엘이 정치적 왕국을 가져올 메시야를 기대하다가 십자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놓쳐 버린 것같이, 이방인인 여러분은 엉터리 성서를 가지고 영적으로 억지로 해석하려 들면서, 주님이 가져오시는 문자적인 왕국을 모르는 채, 영적 왕국만을 찾다가 영광스러운 재림과 천년왕국의 복된 소망을 놓쳐 버려서는 안된다.

사탄의 세력에 쓰러져가는 혼들을 지켜 보노라면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밤새 이 글을 쓰고 싶은 마음뿐이다. 끝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또 대사로서 양육하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말씀보존학회와 성경침례교회, 그리고 신실한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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