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 아래 건초 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했던 날이 있었다. 몸은 지쳐 있었고 피부는 타는 듯이 뜨거웠던 그 때,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져 있던 맑고 푸른 못으로 내려가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벗어 던지고 상쾌한 물속에서 미역을 감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치유의 기적과도 같았고, 마치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로 그 느낌이 내가 땀 흘리며 노예처럼 일했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떠날 때 가졌던 느낌이었다. 나는 카톨릭의 무수한 미신과 속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생수로 깨끗케 되었다. 우리 자신의 공적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값없는 선물인 구원의 기쁨과 평안은 상처 입은 육신에 붓는 치유의 기름처럼 내 마음을 소생케 해 주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 감사드린다. 지금 나는 서품식 때 받은 카드에 써있던 성경구절을 마음 깊이 이해하며 되새기고 있다.
8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이 영광으로 가득 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나니. 8Whom having not seen, ye love; in whom, though now ye see him not, yet believing, ye rejoice with joy unspeakable and full of glory:베드로전서 1:8한글킹제임스성경
나는 영국 북부의 랭카스터에서 태어났고 그곳에 있는 예수회 고등학교를 나왔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문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은 나는 사제가 되기 위해 파리의 카톨릭 신학원과 벨기에의 루베인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3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성 비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영국 북부 지역을 여행하며 설교 및 연구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역사 연구를 통해 나의 생각과 사상은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특히 17, 18세기에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서 활동했던 얀센파 개혁자들에 대해 연구할 때는 초대 교회와 성경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깊이 공감했으며, 중세 이후의 카톨릭 신학의 변천도 연구했다.
그 결과 강론할 때 나는 교황의 권세와 무오성과 지상 대리권을 칭송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교리는 일찍이 3세기에 위대한 순교자 카르타고의 시프리안이 성경적으로 배격한 것이었다. 또 회중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반복적인 묵주의 기도를 드리라고 가르칠 수 없었다.
7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로 생각함이라. 7But when ye pray, use not vain repetitions, as the heathen do: for they think that they shall be heard for their much speaking.마태복음 6:7한글킹제임스성경
또 카톨릭 교회 벽에 전시된 십자가의 14처 중 몇은 아예 복음서에 등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베로니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았다”는 부분이 있는데, 베로니카는 가상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카톨릭 교회에서 숭앙하고 있다. 나는 죄를 용서받기 위한 다양한 행위인 ‘대사(大赦)가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메달들, 작은 형상들, 망토들이
이교도들의 부적처럼 사용된다는 것과, 촛불을 태우는 것이나 성수를 뿌리는 것도 미신적 종교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톨릭에서는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정하신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초대 교회가 성찬용 흰 빵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그것을 들고 한 줄로 서서 행진했다는 성경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그분의 몸과 피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지만, 수백 년 동안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것을 작고 얇은 비스킷 조각으로 대체시켰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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